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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고장 - 형주(荊州)

 

    삼국지의 고장 : 형주(荊州)

  장강삼협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3박4일이 걸리는 무한(武漢)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정이 바쁜 경우에는 간혹 삼협댐 구경을 할 때 의창에서 하선하여 항공기편으로 상해로 나가 귀국을 할 수도 있고 무한까지 자동차로 약 4시간정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선박편으로 24시간도 더 걸리는 코스를 자동차로 이용하면 5시간이 되지 않아 무한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두 번은 무한까지 유람선을 탑승하였으며 한번은 의창에서 무한까지 자동차를 이용하여 달린적이 있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달려갔던 평야가 형주평야였다. 험준한 산을 강을 따라 내려오던 우리 일행은 의창에서 수려한 산세를 구경하면서 아직도 협곡이 끝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달리니 평야가 펼쳐지는데 온사방이 산도 없이 논과 밭이다. 무려 3시간 이상을 달려도 곡창지대만이 있다.

잠시 삼국지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적벽과 함께 형주는 촉나라의 운명과 관련이 많았던 고장이다. 의지할곳 없는 유비는 친척이던 유표(劉表)에 의지하여 형주에 왔었다. 근처에는 단계(檀溪)라고 하는 계곡이 있는데 암살의 위험을 느끼고 명마 的盧에 의지하고 급류를 건너 도망을 친적도 있었다.

 그후 촉나라 유비는 공명의 도움으로 적벽대전 끝에 위나라와 오나라가 전쟁을 치르게 하고 그틈에 형주를 차지한다. 그로부터 형주를 돌려달라는 오나라의 끈질긴 요구를 끝까지 피해간다.

그 역사의 현장 형주를 둘러보고 나니, 이땅은 순순히 돌려줄 땅이 아니었다. 군량미가 전쟁에 있어서 너무 중요한 시기에 이처럼 넓은 곡창지대를 돌려줄 수는 없는 것을 실감했다. 형주를 되찾기 위한 오나라와 촉나라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서 형주를 지키던 관운장은 오나라의 신예 대장 육손에게 패해 형주성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된다.

 관운장의 복수를 위해 출정에 나서는 유비와 장비. 장비도 만취되어 목숨을 잃고 그 뒤에 유비도 초전의 승리를 지키지 못한채 육손에 패배하여 백제성에서 숨을 거두니 삼국지연의의 세주인공이 모두 숨을 거둔다. 주군을 잃은 촉나라도 제갈공명의 눈물겨운 노력도 헛되이 결국  망하게 된다.


 형주고성(荊州古城)

 대의를 그토록 중히 여기던 유비가 형주를 돌려주지 않았고, 오나라 역시 형주를 찾기 위해 그토록 끈질기게 노력했는지 현장에서 나름대로 느껴보았다. 양자강에는 이 외에도 수 많은 삼국지 유적이 있는데 이곳에 다시한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삼국지의 옛 격전지  이릉(夷陵) 과 양자강

 


  백제성 - 유비가 오나라와의 전쟁에 패하고 숨을 거둔곳: 삼협의 제1협- 구당협 입구


 백제성 입구 성안에는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모형들을 만들어 놓았다.

 
 유비가  공명에게 두 아들을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장포, 조자룡 등이 지켜보고 있다(백제성)


무후사(제갈공명 사당)
 사천성 성도(成都)에 있음


 병서 보검협 : 제갈공명이 병서를 보관해 두었던 곳 (제 3협 서릉협)

   
           공명비 : 융중대
제갈공명이 쓴 비석을 보고 오나라 육손이 군사를 철군하고 퇴각했다고 한다.


 출사표 :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송나라 명장 악비가 쓴 글
 운양의 장비묘에 보관되어 있다.

 

◀ 운양의 장비묘(張飛廟)

 풍도를 지나 제 1협으로 가기전에 있는 장비 사당.

  결의루(結義樓)

유비, 관우, 장비 3인이 의형제를 맺는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운양 장비묘)

 

장비가 군사를 독려하고 있는 모습.
  ◀남진관(南津關)

왼쪽 사진의 위쪽에 보이는 석상을 확대한 모습(오른쪽)

 


 관우능묘(關羽陵墓) 형주 


형주고성(荊州古城)

 


 미부인(靡夫人) 투신 우물 :
유비의 미부인이 조자룡에게 아들을 부탁하고 투신했던 우물.

                                                         다음은 유명한 동정호와 악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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