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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삼협-香溪 -왕소군의 고향

 

  향계(香溪) : 미인 왕소군(王昭君)의 고향

   굴원의 고향 자귀는 미인 왕소군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자귀에서 향계하(香溪河)라는 강을 따라 올라가면 향계(香溪)라는 곳이있다. 이곳은 중국의 4대미인 왕소군(王昭君)의 고향이다.

   중국의 4대 미인
 중국의 4대미인은 유명한 양귀비, 서시, 왕소군, 초선을 말하는데 각각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침어(浸魚) -서시(西施)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먹다
 서시는 춘추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 을 비추었다.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 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範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였다.

   낙안(落雁) -왕소군(王昭君) 기러기가 날개움직이는 것을 잃고 땅으로 떨어지다
 한(漢)나라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과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발하여 선우와 결혼을 하게 하였다. 집을 떠나가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생각이나 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폐월(閉月) -초선(貂蟬)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다
 초선은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나라 대신 왕윤(王允) 의 양녀인데,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어느 날 저녁에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리웠다. 왕윤이 말하기를 : "달도 내 딸에 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 고 하였다. 이 때 부터 초선은 폐월(閉月)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초선은 왕윤의 뜻을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 시키며 동탁을 죽게 만든후 의로운 목숨을 거둔다.

   수화(羞花) -양귀비(楊貴妃)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황(唐明皇)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 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는데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다.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황이 그녀의 '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 에 찬탄하고는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고 칭했다.

 이밖에도 중국 미인으로는 조비연, 달기, 포사등이 유명하다.

  왕소군(王昭君)의 생애
 
중국 전한(前漢)말 원제(元帝)의 궁녀로 흉노와의 친화정책을 위해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을 갔고 그가 죽자 그의 아들에게 재가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전설화되어 후세에 윤색되면서 널리 전송되었고 시와 희곡의 소재로 널리 쓰였다. 궁녀가 변방으로 나간다는 사실은 자존심이 강한 중국에서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고 한다.


  
왕소군의 고향 향계에 있는 왕소군 기념관

  왕소군이 변방으로 간 까닭은?
 
중국의 4대미인 왕
소군이 변방으로 간 까닭은 다음과 같다. 서경잡기(西京雜記) 에 이르면 원제에겐 후궁이 너무 많아 일일이 천자가 그녀들을 볼 수가 없어서 화공 모연수에게 초상을 그리게 한후 그림을 보고 궁녀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에 후궁들은 화공에게 잘 그려 달라고 뇌물을 바치게 되었는데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밉게 그려져서 황제곁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세력이 커지기 시작한 흉노와 화친을 위하여 궁녀 한 사람을 선우에게 시집을 보내고자 하여, 원제는 화공이 올린 초상화를 보고 그녀가 제일 못생긴 왕소군의 초상화에 점을 찍어 흉노족에게 시집 보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수레에 실려 가는 때에서야 그녀의 미모를 본 원제는 놀랐다. 그녀가 후궁중에서 제일 가는 미녀였기 때문이었다.  

 원제는 땅을 치며 후회하였지만 이미 결정된 일인지라 번복할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된 책임을 물어 그녀의 초상을 실물에 훨씬 못미치게 그린 화공을 죽이고 재산 또한 몰수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고야 말았다.

실로 중국인으로서는 애석하게 생각하는 미녀이다. 왕소군의 이 역사적인 드라마틱한 슬픈 이야기는 중국이 오랑캐들을 달래기 위한 화친정책 때문에 생긴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향계에 있는 기념관에는 왕소군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우물과 16세때 고향을 떠날 때 까지 사용했던 화장대라 불리우는 16개 돌계단과 동그란 거울 모양의 통로가 있다.


 
향계 왕소군 기념관에 있는 왕소군의 동상.
자귀의 향계하 입구에 있는 왕소군의 동상. ▶


 
향계에 있는 왕소군의 우물 남목정(楠木井)▶

 

  왕소군과 관련된 한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昭君出塞 소군출새

昭君拂玉鞍

원제의 궁녀 소군,치맛자락으로 구슬 안장 건드리듯.

上馬啼紅頰

말 위에 오르니 붉은 두 빰이 우네

今日漢宮人

오늘까진 한궁의 여인이지만

明朝胡地妾

내일부턴 오랑캐의 첩(妾)

  오랑케 땅으로 간 왕소군의 처지를 생각한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충신과 미인의 고장 자귀는 장강삼협의 제3협인 서릉협(西陵峽)의 출발지 이기도 하다.

                                                 다음은 장강삼협의 제3협 - 서릉협(西陵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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